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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고성 가볼만한 곳 고성박물관과 고성 송학동 고분군

by 가족바라기 2020. 8. 12.

휴가를 맞이하여 적적해하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통영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마기간이기도 해서 걱정도 되긴했는데 여행하는 동안 큰 비를 만나지는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통영 가는 길에 숙소 입실 시간이 남아 고성박물관을 한 번 둘러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고성 공룡박물관은 가봤는데 시부모님이라 공룡박물관보다는 그냥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둘러보았습니다.

고성박물관

위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로 113번길 50

고성 가야 유물전시관

하절기(3월-10월) 09:00-18:00(1월1일. 설날, 추석 당일, 월요일 휴무(월요일이 휴무인 경우 화요일 휴관)

  동절기(11월-2월) 09:00-17:00               

관람료: 무료

주차장: 있음

전화 055-679-5822

고성박물관은 1999년과 2002년에 이루어진 사적 119호 고성송학동 고분군 발굴조사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6년 사적 보존정책에 따라 2012년 5월 17일날 개관을 하였습니다.

고성박물관을 들어서니 코로나 19로 한명 한명 열을 체크하고 손소독하고 남편은 기록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고성박물관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체험실, 역사도서실 등 고성의 역사에 관한 볼거리도 풍부하여 가족과 함께 오기에 좋은 곳입니다.

고성박물관 1층은 옛 고성읍 사진과 송학동 고분 발굴 당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면 소가야의 기마무사가 화려한 위용을 보여주며 우릴 반깁니다.

고성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역사를 소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특별전시를 통해 고성의 역사 전반에 대해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부모님과 찬찬히 둘러보며 역사를 다시 되새겨봅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해 어머니께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구석기시대, 신석기 시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니 흥미를 가지시고 열심히 들으십니다.

도구가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사진을 보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매우 흥미로워 하셨어요.

청동기시대의 큰 특징은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계급문화가 발생했습니다.

고인돌, 돌널무덤, 집터 등은 고성에서의 화발한 청동기 문화를 알려줍니다.

고성 주요 유적은 하일면 오방리,학림리 고인돌, 하이면 석지리 고인돌이 있으며 고성읍 교사리, 상리면 무선리, 마암면 두호리에서는  청동기시대 돌넘무덤과 집터가 발굴조사 되었습니다.

 

삼한은 마한, 변한, 진한을 일커는데, 고성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나타나는 변진 12국 중 하나인 고자미동국의 중심지이며 뒷날 소가야로 발전하게 됩니다.

고성읍 동외동 유적, 송학리 패총, 하일면 송천리 솔섬 돌넘무덤 등이 모두 이시기의 유적에 해당됩니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봉분을 가진 삼국시대 분묘로서 축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해상교역의 중심지, 소가야

낙동강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작은 나라를 형성한 변한의 재국들을 각자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각각의 가야국으로 성장합니다. 고고학적으로 볼때 5세기 전반에는 소가야양식이라 부를 수 있는 지역특색을 갖춘 토기들이 등장합니다.

고성 송학동 내산리고분군은 소가야 새력의 규모와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적들로 각종 유리장신구, 칠기류 등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화려했던 거상의 소가야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대 고성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는데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변진고자마동국이라는 이름입니다. 중국을 기준으로 동쪽인 변진한의 소국 중 고자미국이라는 뜻입니다. 여러기록에서는 고사포국,고자국, 과국, 구차국, 소가야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중 널리 알려진 것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소가야입니다.

고성 동외동 유적은 1969-1971년, 1974년,1995년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여 국립 중앙박물관이 조사한 결과 유적의 하층부에서는 적갈색 연질토기가 상층부에서는 도질 토기와 소위 김해식 토기가 출토 되었습니다. 동외동 유적은 무덤, 주거지, 외래공간, 생활페기장 등 구역분리가 정확히 이루어진 생활공간으로 소가야 성립 직전 고성지역 상황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유적입니다.

 

그리고 고성 송천리 솔섭 유적 무문토기, 외질주머니호, 돌도끼, 쇠뢰 만든 검 등이 출토되고 있어 소가야 성립 직전 시기에 형성된 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성지역 곳곳에서 소가야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에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생활하다가 보니 역사의 흔적들이 덧대어져 옛 모습은 사라지고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실체가 확인되어 고적으로 관리되어오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해면 내산리 일대에 아트막한 야산의 구릉에65여기의 봉토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당항만, 동쪽으로는 적포만을 접하고 있어 대 가야계, 신라계, 영산강계 등 다양한 외래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바다를 기반으로 한 해상활동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고겅 내산리 분묘에서 나온 가락바퀴입니다.

고성지역의의 고분의 축조 방법은4단계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고분의 축조된 형태입니다

해상왕국 소가야입니다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당시  대 외교역에서 주도작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작은 모형으로 생활 하는 모습들이 잘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신기하게도 고성 박물관을 구경하셨다면 건물을 나와 옆 계단을 오르면 송학동 고분군이 나옵니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사적 제119호로 송학리 470번지에 윛하여 소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1963년 1월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2003년에 송학동에 고분군 8기와 제2 고분군 6기를 통합하여 송학동 고분군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소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중에서 제1호 고분은 겉모양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닮았다 하여 한일 양국 간에 뜨거운 논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동아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고분군의 특징이 밝혀졌습니다.

첫째, 모든 고분의 봉토는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렸으며 언덕위를 평평하게 고른뒤 한 층씩 다져가며 쌓아올린 판축형태입니다.

 

둘째, 제1호 고분은 13기의 돌덧널가 2기의 돌방무덤으로 3기의 독립된 둥근 봉토를 가진 고분이 겹쳐있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다른 형태의 무덤입니다.

셋째, 가장 북쪽에 있는 1B-1호 돌방무덤은 전통적인 가야고분과 달리 입구, 벽면 천정에 붉은 색이 칠해진 채색고분입니다,

넷째,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금동귀걸이, 마구류, 은장식큰칼, 청동제굽다리접시, 유리구슬 등 모두 천여 점이나 됩니다.

다서째, 출토된 유물의 특징으로 이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저반 경에 조성되었으며, 소가야의 중심고분으로서 지배자 집단 또는 왕릉 급의 무덤에 해당합니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분묘를 기준으로 넓게 펼쳐져있어 산책하기 좋았으며, 동네 가까이에 있어 더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들도 마을에 묘가 있으니 신기해 하시며 관심을 보여 잘 모시고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고성박물관이지만 구경하고 바로 이어져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을 둘러볼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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